[11월 8일 포스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유혹당하지 말 것>과 같은 시를
 통해 드러나는 브레히트의 종교관


죽음은 중요한 종교적 테마이다. 그렇지만 브레히트는 <익사한 소녀>와 같은 시에서 보여지듯, 인간은 부패해서 자연으로 돌아갈 뿐이며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은 없다고 종교적 가르침에 반기를 든다. 그는 '인간이란 동물과 마찬가지로 죽게 마련'이고 '죽음 뒤에는 아무 것도 오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신의 허무주의를 오히려 현세주의와 결합시킨다. 죽음으로 인한 절대적 한계성이 역으로 생을 완전하게 향유하기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브레히트는 종교적 윤리에 '유혹당하지' 말고 삶을 단숨에 '들이마시길' 요구한다. 삶이란 종교적 가르침과는 달리 일회적인 것이니까. 그뿐인가. <유혹당하지 말 것>의 '부역과 착취를 감내하도록 유혹당하지 말아라'와 같은 시구를 들여다보면 미래에 저당잡혀 사는 삶 또한 거부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알다시피 브레히트는 발전적인 역사관에 그리 신뢰를 보이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이처럼 현세를 철저히 향유하려는 세계관은 <바알 신 Baal>에서도 잘 나타나고 브레히트의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면모는 <진드기에 대한 보고서>나 <죽은 병사의 전설>과 같이 성직자들을 풍자해 놓은 시들을 통해서 또 엿볼 수 있다.

유혹당하지 말 것 Gegen Verfuehrung
베르톨트 브레히트 (1898-1956)

1
유혹당하지 말길!
삶에 윤회는 없다.
낮은 문 안에 있고
당신들은 벌써 밤바람을 느낄 수 있다.
더 이상 아침은 오지 않는다.

2
속지들 말길!
삶은 얼마 되지 않으니
단숨에 들여마시길!
당신들이 삶을 그대로 둔다면
삶은 당신들을 만족시키지 못할 테니까!

3
후일을 기약하지 말길!
당신들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으니까!
구원받은 자에게는 곰팡이나 피게 하라지!
삶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것.
그건 더 이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4
부역과 착취를 위해서
유혹당하지 말길!
무엇이 당신들을 아직도 불안에 떨게 하는가?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당신들은 죽는다.
그리고 그 후에는 아무것도 오지 않아.



<<가정 기도서>>를 통해 살펴본 브레히트 시들의 출발은, 역사적 한계에 봉착하여 가치체계 전반에 걸쳐 가치상실을 겪은 시민사회에 대한 부정이다. 여기에는 종교적 가치관이나 가부장적 세계관 같은 기존의 질서에 반항하는 정신도 담겨 있다. 초기시에서 느껴지는 그의 허무주의적 경향을 나는,  브레히트 개인의 정신적 소산이라고 평가하지 않고 역사적 경험의 결과물로 여기고 싶다. 브레히트의 허무주의는 상황에 손쉽게 좌절하고 마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다. 일련의 시들을 통해 시인은 고립되고 소외된 개인이 어떻게 연대를 이룰 수 있을까, 합일감을 느낄 세계를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모색을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시에 유독 '-에 대하여' 식의 제목이 많은 것은 브레히트 특유의, 개인적 체험에 거리를 두고 낯설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는 이같은 시도를 통해서도, 시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객관적이고 사회적으로 거듭나기를 꾀했던 것이 아닐까?


+몇 년 전 써놓은 소회:
개인적으로 브레히트의 초기시들-표현주의 성향이 강한, 젊은 브레히트의 고뇌와 허무주의 짙은 시들을 좋아하는 편. 마르크스 주의를 학습한 이후의 중기시들과 후기시들은 확실히, 역사 속에 사는 인간에게 도외시할 수 없는 화두를 제시해 준다. 브레히트는 충분히 '아름다운 사과나무의 감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엉터리 화가(히틀러)'에 대해 분노하는 쪽을 택했다. 그를 정말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시론에 일백 퍼센트 동의할 수 없지만, 그의 고뇌와 고단했던 삶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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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짱이세실의 도서관 :: 브레히트의 초기시-<<가정기도서 Die Hauspostille>>를 중심으로 (2)

    2014.10.2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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